'판 벌리는' 지자체, '판돈'으로 재정확충 미디어다음 / 김진화 기자 media_evo@hanmail.net 지자체의 재정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2002년 전국 광역시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66%에 그치고 있고, 도의 경우 30% 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높은 재정자립도를 보이고 있는 곳은 경기도 과천시다. 2002년 기준 과천시의 재정자립도는 94%. 변변한 공장 하나 없이, 정부종합청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주거단지가 형성돼 있는 과천시의 재정이 이처럼 탄탄한 이유는 뭘까. 비밀은 '경마장'에 있다. 지난해 과천시가 경마 관련 세수로 벌어들인 돈은 1104억원. 과천시 연간 재정의 52%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열악한 재정구조를 가진 지자체들은 하나같이 경마장과 같은 '도박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존의 경마, 경륜, 경정장을 신규로 유치하려는 것은 물론 소싸움, 경견장 등 새로운 종목을 도입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3,4년 후 전국적으로 70~80여개의 각종 도박장이 성업할 것으로 우려된다. 권역별로 1곳 이상의 대형 도박시설 들어설 전망 경견장 제안 거절한 부천시, "우리는 문화도시" 도박시설을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난 3월 경기도 부천시(시장 원혜영)는 경견장 건립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한 민간업체로부터 경견장 건립제안을 받은 부천시는 시의회 논의, 사업성 심사, 시민과 지역언론의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 부천시 문화공간기획팀 박헌섭 팀장은 "우리 시가 지향하는 문화도시의 이미지와 사행산업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앞으로도 도박시설을 유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부천시는 경마 장외발매소의 부천역 근처로의 이전 또한 '공익적 차원'에서 부결시켰었다. 가장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곳은 부산이다. 부산시는 오는 10월 서울과 창원에 이어 3번째로 경륜장을 개장할 예정이며, 2005년 경마장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변도시의 특성을 살려 경정 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될 경우 지난 2001년 개장한 창원 경륜장과 함께 부산경남 지역에만 4개의 대형 도박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대전과 광주는 나란히 2006년 개장을 목표로 경륜장 건설을 추진중이다. 두 도시는 지하철 건설로 인해 악화된 시 재정이 경륜장 도입의 주요 동기라는 점에서도 닮은 꼴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지난 6월24일 문화관광부에 경륜장 승인신청서를 제출했다"며 "부지 선정도 끝난 상태여서 승인만 떨어지면 순조롭게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여러 자치단체들이 도박사업 추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해외에서 시행 중인 경견(개 경주)사업 도입을 추진하는 도시는 모두 4,5 곳에 달한다. 충북 제천시는 경견장 부지까지 확정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춘천시 또한 민간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해 경견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외에도 경기도 가평군, 전남 화순군, 진돗개로 유명한 진도군 등이 경견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미사리 한 곳에서 시행중인 경정도 전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경기도 안산시가 2006년 6월까지 2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시화호에 경정장을 건립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남 나주, 영암 등 3곳의 자치단체가 경정장 건립을 추진중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게지", 시민들 반응 냉담 지자체들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대전경륜장 건립 저지 충청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5월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전시민의 69.6%가 경륜장 건립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만나 본 시민들의 반응 또한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유성에 위치한 경정 장외발매소에서 만난 한 시민은 "취미로 즐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면서, 경륜장 건설 계획에 대해 "시민들 등 처먹으려는 수작"이라고 일갈했다. 발매소 앞에서 경정예상지를 판매하는 중년 여성은 "대전에는 경마, 경륜, 경정 등 모두 3개의 장외발매소가 있는데, 예전에 비해 외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하다"고 말해 대전에 경륜장이 건립돼도 시가 내세우는 관광객 유입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 국장은 "주민투표 또는 제3의 독립적 기관에 의한 여론조사 등을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시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경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각 지자체들이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합리적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문화관광부 등 정부부처가 나서 과잉공급 양상을 보이고 있는 도박장 설립 계획을 전국적 시야에서 조절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경륜은 건전한 욕구분출 도구, 재정 확충에도 기여해 일석이조" 시민단체들은 "도박장을 건설해 세수가 증대되고 이를 통해 복지가 증진된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지역사회의 피해까지 감안하면 결코 이득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YMCA가 공동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2006년 대전경륜장 건립 이후 5년간 대전 지역 주민들이 입게 될 피해는 최대 3,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같은 기간 대전시가 예상하는 세수가 최대 8,200억원인데 반해, 베팅으로 인한 지역주민 손실액, 경륜장 건설비용의 감가상각비, 도박중독자 치료비용 등 제반 비용은 최대 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시민단체들의 조사 결과는 일부 지표를 과장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면서 이 같은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도박중독 문제 등에 대해서는 "자동차 사고가 무서워 길을 안 닦을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상담실 운영 등 소극적인 대응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계도 및 도박중독 치유활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식도 일종의 도박이지만 기업의 자금조달에 일조하는 것처럼, 경륜도 도박성이 짙기는 하지만 부족한 지방정부의 자금조달에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며 경륜장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레저시장에서 도박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51.4%로 매우 높다. 일본의 경우 26%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의 도박시설 유치가 사회적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 보다 심도깊은 논의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도박산업이 빈곤층의 가처분 소득을 흡수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낸다"고 지적하면서, 지방정부의 재원확충을 위해 지역민들의 빈곤화와 정신적 공황이 초래돼선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