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장을 관광시설로 육성? - 관광진흥법 개정 논란
미디어다음 / 김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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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내 성인오락실의 불법영업행태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서 문화관광부가 이들 오락실을 '관광시설로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관광진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문광부 안에 따르면, 앞으로 호텔오락실은 일반 성인오락실과 다른 '관광게임장'으로 등록돼 관광진흥기금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각종 규제에서도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에는 투자를 조건으로 외국인의 카지노업 진출을 허가하는 내용도 담고 있어 "내국인의 (제주 지역) 카지노 출입을 허가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호텔오락실 버젓이 불법영업
문광부가 관광시설로 지원, 육성하려는 호텔 내 성인오락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대전시내에 위치한 D관광호텔. 이 호텔 2층에는 30여대의 성인용 게임기가 설치된 오락실이 성업중이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30여대의 게임기는 꽉 차 있다. 한번 베팅에 드는 돈은 300원. 대부분의 손님들은 자동으로 베팅이 되도록 설정을 해 놓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불과 10분 안에 1만원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한 이용객은 "하루에 70만원 정도는 털어 넣어야 제대로 게임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잭팟을 터뜨릴 경우 받게 되는 경품이 현행법에 규정된 5만원을 훨씬 상회하는 70만원인 것도 문제다. 이 또한 법적으론 '호텔이용권'으로 주어지게 돼 있으나 이 업소에선 '국민관광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이렇게 받은 국민관광상품권은 이 호텔 1층에서 바로 환전이 가능했다. 수수료는 5%.
서울 모 특급호텔 성인오락실. 평일인데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업중이다. 이 업체는 거의 모든 규정을 어겨가며 사실상의 슬롯머신 영업을 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서울의 사정은 더 심각했다. 강남에 위치한 한 특1급 호텔. 이 호텔 지하 아케이드 외진 곳에 위치한 성인오락실엔 50여대의 게임기가 설치돼 있었고, 이 곳 역시 손님들이 기다릴 정도로 성황이었다. 한번 베팅에 드는 금액은 500원으로 액수가 대전보다 더 컸다. 게임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년 남성들. 모두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호텔 투숙객은 아닌 듯 했다.
이 곳 역시 경품으로 '국민관광상품권'을 한번에 70만원까지 제공하는 한편, 5% 수수료를 제외하고 환전해주고 있었다. 이 업소는 전체 게임기 중 20%를 성인게임기가 아닌 일반게임기로 설치해야 하는 조항도 위반하고 있었다. 업소에 설치된 게임기는 전부 성인용 도박 게임기. 현행법상 강원랜드만 할 수 있게 돼있는 슬롯머신 영업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련 단체들 강력 반발, "사실상 호텔 슬롯머신 영업이 부활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문광부가 이들 업소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대신, 법 개정을 통해 '관광시설로 육성'하려는 것에 대해 관련업계와 시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반 성인오락실의 대표체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는 "지금도 호텔 오락실의 불법 영업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는데,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인해 이 같은 불법영업행위가 양성화된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라며 법개정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강원랜드가 위치한 강원도지역 여론 또한 매우 부정적이다. 강원도의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이미 법개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고, 문화예술단체인 민예총 강원지회까지 나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전국 30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도박장반대전국네트워크'도 "관광호텔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성인게임장을 육성할 경우 도박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화관광부는 "슬롯머신 영업 허가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광시설로 육성하기 위해 기존의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 아닌 '관광전자게임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반대론자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시행령이 확정되지 않아 확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내국인 카지노 출입 허가도 뜨거운 감자
토요일 오후 텅빈 제주외국인 전용 카지노. 제주지역 카지노 업체들은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며,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카지노 허가를 주장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한편 관광진흥법 개정안에는 5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조건으로 외국인의 카지노 영업을 허가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현재 제주지역에서 운영 중인 8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모두 적자 상태이고, 적자 규모도 작년 기준 158억원에 달할 정도로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했다가는, 투자 외국인이 시장확대를 요구할 경우 내국인 출입을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관광진흥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도박'에 대한 우리 사회 혼란상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업자들은 어떻게든 규제를 뚫고 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해 보다 많은 이윤을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부는 도박산업의 비정상적인 팽창을 통제하기는 커녕 수수방관하거나 오히려 이해 당사자간 밥그릇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관광진흥' 관점에서만 도박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도박의 폐해를 방지하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의 도박 열기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