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서울 YMCA의 고뇌 지난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4층 컨퍼런스홀. 서울기독교청년회(서울YMCA)가 창립 100돌을 기념해 ‘한국 와이엠시에이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있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청중사이에서 고함이 터져나오면서 진지하던 토론 분위기가 깨졌다. “와이엠시에이운동이 정체성을 상실했다, 회원성이 와해됐다 등등은 너무 심한 표현 아닌가” 이 단체의 ‘개혁파’쪽이 오는 28일 열릴 100주년 기념식에서 채택할 ‘한국와이엠시에이운동 100년 선언’의 초안을 발표하자 ‘상실’‘와해’등의 단어가 섞인 문안에 불만을 느낀 ‘보수파’ 이사진쪽에서 항의하고 나섰다. 비록 작은 소동으로 끝났지만 이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기독교청년회가 중병을 앓고 있음을 드러낸 ‘징후’로 볼 수 있다. 서울기독교청년회의 ‘청년정신’은 ‘100년 역사’속에 묻혀 버리고 마는가 청년정신과 100년 역사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단어는 지금의 서울기독교청년회가 내세우는 자랑이면서 동시에 뛰어넘어야 할 과제다. 우리나라 젊은 기독교운동의 성지이자 엄혹한 시대를 이겨온 시민운동의 모체로 일컬어져왔던 와이엠시에이가 한세기의 역사를 넘어서는 올해 유난히 거센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이날 열린 심포지엄에서 와이엠시에이운동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심포지엄에서 ‘한국와이엠시에이운동 100년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란 제목으로 발제를 맡은 윤경로 교수(한성대)는 “기념비적인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와이엠시에이의 모습은 한마디로 어둡다”고 정의했다. 또 와이엠시에이에서 운영하는 시민의식 개발 프로그램 시민논단의 노종호 위원은 “한국 와이엠시에이의 모습은 정체성의 상실, 운동력의 퇴화, 회원의 부재라는 참담한 현실에 놓여있다”고 고백했다. 한 참석자는 “100살 생일에 자랑과 찬사보다는 반성과 비판을 더 많이 들어야했다”며 참담한 느낌을 털어놨다. 서울기독교청년회의 갈등과 고민의 뿌리는 ‘100년 선언’ 초안에서 밝힌 것처럼 정체성과 비전의 상실에 있다. 지난해 벌어진 표용은 이사장 비자금 파문이후 서울기독교청년회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표 이사장은 퇴진했지만, 정체성과 비전을 가로막고 있는 내부갈등의 근본 원인은 여전히 똬리를 옮기지 않고 있기때문이다. 정체성 상실과 관련해, 박영숙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서울기독교청년회가 무모한 외형확장과 수익추구를 지향하면서 운동체가 아닌 ‘기구화’되어가는 위기에 처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외형적 성장이 아닌, 회원운동체·청년운동체로 회복하는데 100년의 저력을 투입해야한다”고 진단했다. 현재 서울기독교청년회는 4만5천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지만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은 매우 적다. 한 실무 간사는 ‘현재 와이엠시에이는 회원없는 회원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회원 확대운동마저 위축돼 대학·청년 클럽이 해체되거나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외형확대와 수익 창출을 위해 백화점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다보니 기독교운동과 시민운동이란 본래의 정체성은 크게 약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시민운동가들 사이에 “와이엠시에이의 찬란했던 등불은 꺼졌다”란 얘기까지 나오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서울기독교청년회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배경에는 ‘깨지지 않는 이사회 카르텔’이 작용했다는게 내부의 비판이다. 지난해 표 이사장 파문때 ‘개혁과 재건을 위한 비상회의’를 결성하고 나선 개혁파들은 “현 이사진들이 수십년간 최고권력기구인 이사회를 장악한채 그동안 외형확장과 수익사업을 벌이며 자리지키기에 안주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자금 의혹이 일었던 표 이사장은 30년이상 이사직을 맡고 14년간 이사장을 독점하며 이사진과 회장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어 키워왔다는 설명이다. 표 이사장 파문이 겉으로 봉합되던 올해초 개혁파를 주도했던 몇몇 운동가와 이사회는 헌장·여성·개혁특위 등 3개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달까지 6개월이 넘도록 단한차례 모임을 가지지 못했던 3개 특위는 100년주년 기념식을 앞둔 며칠앞둔 지난주부터 겨우 접촉을 갖기 시작했다. 이 특위들은 지난주 각각 첫모임을 갖고 △서울기독교청년회 헌장 개정안을 마련을 위한 소위원회 구성 △이사진 선출방식△회원의 60%에 달하는 여성들에게 투표권과 총회참석권을 부여 등에 관해 논의를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내부에서는 “늦었지만 와이엠시에이가 살아남을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강태철 현 회장은 100주년을 앞두고 지난주 가진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에서 변함없는 청년정신을 가진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특별히 ‘초심’을 강조했다. 서울기독교청년회의 ‘초심’이란 100년전 개화와 자주를 열망했던 청년 운동가들이 가졌던 마음이자, 현장으로 돌아가 고통받는 민중 또는 시민과 함께 하려는 ‘청년정신’일 것이다.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