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명구와 함께 춤을 1. 1993년 재수시절 봄이었다. 어떤이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별로 대꾸할 가치가 없어 시쿵둥하게 굴다. 재수생과 삼수생들의 화합을 위한 체육대회는 근처 중국집으로 이어지다. 돌아가며 노래를 했던 것 같은데 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나는 「A Tale That Wasn't Right」을 부르다. 2. 재수시절 엄청난 골초였다.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4월이나 5월쯤이었는데 어김없이 쉬는 시간에 담배를 꼬나물고 화장실로 향하다. Helloween의 「Rise And Fall」의 시작 부분을 부르면서 화장실 문을 여는데 누군가 그 다음 구절을 외쳤다. 탐탁치 않았던 어떤이였 다. 3. 어떤이와 친해져 많이 놀러 다니다. 친구 하나가 차를 빌려 젊은 청춘들이 냇가로 놀러가다.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이 열심히 살아보자는 다짐에서 간 건 아니었다. 그냥 바람 세러 가다. 냇가에 앉아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부르는데 그가 나보다 정확한 가사로 나보다 더 잘 불렀다. 연달아 이정선의 「한밤중에」도 부른 것 같다. 4. 어떤이와 노래방을 가다. 감동 받다. 지금까지 가수들을 제외하고 주변인들 중 노래를 잘하는 인간들이 숱하게 많았지만 그의 노래는 항상 첫손이었다. 가식적이지 않으면서 진실됐고 노래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어울러 사는 법을 배웠다. 그와 신촌 블루스의 「아쉬움」을 듀엣으로 부르다. 그 후로 10년 동안 가끔 신이 나면 그와 「아쉬움」을 부른다. 5. 어떤이와 10년 동안 매주 한 번씩은 만난 것 같다. 그가 서울에 있어도 만나고 내가 서울에 있어도 만났다. 이상한 인연이다. 많이 논쟁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깔끔했고 다음날 전화 걸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만나며 얘기했던 주제가 세 개 정도였던 것 같다. 삶, 음악, 책. 6. 작년말 어떤이와 함께 선배의 집을 방문하다. 선배는 음악의 소음을 싫어해 오디오를 켜지 않았다. 잠시 형수한테 청해 국악을 듣다. 둘이 즐거워하다. 형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다. 집에 갈 차비까지 술값으로 쓰고 오랜만에 둘이 한참을 걸어오다.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다. 날씨가 추웠는데도 30분 가량 걸어오는 밤길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 우리 그때 무슨 노래 불렀지. 7. 어떤이가 장가를 간다.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건 기쁜 일이다. 친구를 붙잡고 춤을 추고 싶다. 달빛 아래면 더욱 어울릴 것 같다. 결혼 축가로 뭐가 좋을까. 내가 부르고 싶은데 어떤이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선곡된 이쁜 노래 몇 곡 들려줘야겠다. 「추명구의 꿈」이나 「아름다운 김종남」이 어울릴 듯 하다.